2010년 2월 13일 토요일

재정적자: 미래세대의 시한폭탄 (한국일보 연재 마지막 분)

 
[또다른 괴물 재정위기 온다] 전체보기 -한국일보

5. 한국 나랏빚이 무려… 증가속도 감당못해 [아래 펌]
5-1. "침체땐…" 전문가가 말하는 한국의 상태
5-2 남유럽발 재정위기 영향 아직은 견딘만(?)
4. 세계경제 치명상… 美 '시한폭탄'에 초긴장
3. 천문학적 나랏빚… 코너 몰리는 경제거인日
2. 해저무는 제국-英, 잘나가던 금융산업이…
1. 빚더미 대륙 유럽 '거덜난 곳간'서 퍼내기만
◎ 썰렁한 패션街 "재앙이 문 앞에 온 느낌"
◎ 세계경제 '재정의 덫' 빠져 또다시 신음

 

 

대한민국 나랏빚 400조… 量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문제
[또 하나의 괴물이 온다 "재정위기"] <5·끝> 한국은 이상없나
국가채무 2년간 100조 증가… GDP의 36% 차지
삼성경제硏 "고령화 빨라 2050년 재정 위기" 경고
통일 비용 감안해 공기업 채무까지 엄격 관리해야

 

적어도 재정에 관한 한, 한국은 '우등생'이었다. 환란 이후 처음 재정이 적자로 돌아선 뒤, 마이너스 행진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감내할만한 정도였다. 국가채무 비율 역시 선진국의 절반 이하였다. 현 정부가 대규모 감세에 나서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슈퍼 추경'등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비쌌다. 재정 적자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장'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나 미국 일본 영국 등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우등생 지위가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재정은 일단 붕괴되면 그 충격의 깊이와 강도가 메가톤급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안전한지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일단 통계 수치로만 보면, "아직 괜찮다"는 정부 주장이 틀리지 않다. 올해 예상되는 국가채무는 407조2,000억원, 국내총생산(GDP)의 36.1% 규모다. 일본(227%) 그리스(125%) 이탈리아(120%)는 물론 미국(94%) 영국(82%) 등과 비교해도 여전히 양호한 편이다. 작년 재정적자도 51조원으로 GDP의 5%에 달했지만, 이 역시 선진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가파른 증가 속도다. 국가채무는 203조원(2004년) →309조원(2008년) →366조원(2009년) →407조원(2010년) 등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추세. 특히 작년과 올해 2년간 불어나는 채무만도 100조원에 육박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2년(18.5%)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머지 않아 진짜 재앙이 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 예상대로 2013년께 균형 재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재정 지출이 늘면서 2050년 적자가 GDP의 10%에 이르고 국가채무는 GDP의 91%에 달할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을 내놨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의 현 재정상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특히나 정부 예상과 달리 지금의 적자 구조가 만성화하면 재정 위기 시점이 2040년으로 10년 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다. 재정측면에서 고령화는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들고, 세금 쓸 사람은 많아진다는 뜻. '재정위기가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재정문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일본 등 경제대국들이야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영역에 속하고,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은 결국 다른 유럽국가들이 도와줄 수 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비빌 언덕'도 없다.

 

더구나 금액조차 추산키 어려운 통일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현재의 재정통계수치에 안주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재정통계 자체를 좀 더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식 국가채무로 잡히는 중앙ㆍ지방정부 채무 외에 공기업ㆍ공적금융기관ㆍ정부보증 채무 등도 광의의 국가채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공기업 채무나 보증 채무 등은 문제가 생기면 최종적으로 국가와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몫"이라고 말했다. 박종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금융 부문의 취약성, 높은 대외 의존도,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우리는 선진국보다 더 튼튼한 안전판,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에 시한폭탄을 안겨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영태기자 ⓒ 인터넷한국일보 입력시간 : 2010/02/11 21:09:25 

 

 

[백승종의역설] 국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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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9일 화요일

반기련-기독교비판-버스광고 & 교회풍경-김두식

▲'기독교 비판' 버스광고 이미지 (출처=반기련)

 

네티즌단체, ‘기독교 비판’ 버스 광고 
반기련, 서울지역 노선에 실시…“강남에서는 거부당해”

네티즌단체가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비판하는 버스 광고를 오는 5일부터 약 1달 동안 실시할 예정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보수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지난 2003년 만들어진 ‘반기독교시민연합(이하 반기련)’은 3일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반기련은 면목동, 광화문사거리, 망원동 등을 지나는 간선버스 271번 2대와 구로동, 여의도, 서울역 등을 지나는 간선버스 503번 2대, 그리고 종로, 능동사거리, 면목동을 지나는 지선버스 2013번 2대와 철산동, 영등포, 신촌 등을 지나는 지선버스 5714번 2대 등 총 8대의 버스에 광고를 하기로 했다.

도심 지나는 버스에 '기독교 비판' 광고

이번 광고에는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격언이 담겨있다. 반기련은 오는 6일에는 ‘기독교 비판’ 광고를 부착한 버스를 타고, 시민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행사도 열기로 했다. 이찬경 반기련 회장은 4일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일부 기독교 세력이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들을 더 많은 시민들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버스광고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애초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문구를 광고에 담을 예정이었지만, 버스광고 대행사들이 난색을 표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수위를 많이 낮춰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문구를 채택했다”며 “하지만 강남지역 버스노선에 광고를 대행하는 회사들은 아예 광고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권력화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 반응 엇갈려

이번 버스 광고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신선하다”는 반응과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 글을 남긴 ‘야수(닉네임)’는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 있도록 많이 알려야 할 내용”이라면서, ‘매향청송’은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고 싶다”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에쉬’는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클럽 안티기독교’와 함께 대표적인 반기독교운동 단체로 평가받는 반기련은 현재 1만여 명의 네티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보수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다양한 토론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기독교 반대’ 마라톤 대회 등도 진행하고 있다.
레디앙 2010-02-04 11:32 손기영 기자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196

 

 

[새책] 목사를 좇다 예수를 놓친 한국 교회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김두식 지음, 홍성사, 2010-01-25, 336 p.

한국 교회는 ‘영화관 교회’다. 목사는 설교만 하고, 교인들은 그저 듣기만 한다. 목사의 목소리가 커질 때면 간간히 ‘아멘’이나 ‘할렐루야’를 외치는 게 전부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인들의 정신상태는 갈수록 관람자나 시청자처럼 변해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가서 ‘개인기’로 충만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면 그걸로 ‘땡’이다. 교인들은 개척교회에 가길 꺼린다. 건물 신축 헌금 등 각종 헌금 강요가 불 보듯 뻔하다. 차라리 번듯한 건물이 있는 대형 교회에 다니면 부수적으로 얻는 이익도 많다.

목사의 성공은 교인 수나 헌금 액수, 교회 건물 규모로 평가받는다. 목사는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중소기업 사장님에 가깝다. 자기 손으로 일군 ‘기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소유욕, 그 기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의지, 권위적 태도가 그렇다. 많은 설교를 해야 하는 목사들은 감동적인 설교를 위해 표절도 생활화돼 있다. 유학파 목사가 늘어나면서 영어 성경을 인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일상 언어와 담쌓은 성경책은 교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어려운 성경은 언제나 해석해줄 ‘브로커’가 필요하다. 말씀을 해석할 권한을 독점한 ‘브로커’는 그에 따른 권력을 누리게 된다.

‘사탄’으로 불릴 각오가 서 있지 않다면 기독교 내부 논의에 아예 끼어들 생각을 말아야 한다. ‘무개념’에 기초한 기독교인들의 공격성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단으로 낙인찍는다. 이 함정에 걸려들면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은 끝장이다. 이기적이며 말과 행동이 다른 독선적 기독교인들의 자화상이다. 생명력이 완전히 빠져나가 윤기라고는 전혀 없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북어포나 오징어포 또는 잘 말린 육포를 연상케 한다.


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지금까지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슬픔·절망·희망을 담은 책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펴냈다. 그에게 교회는 기쁨의 원천이면서 슬픔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은 쓰고 싶어서 쓴 책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쓴 책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책은 제목처럼 세상 속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속의 세상이 돼 버린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한다. 세상 속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과 구별돼야 하는 공동체가 어느새 철저히 세속화해 ‘교회 속에’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오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속화된 교회는 날로 그 힘을 축적해,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까지 시작한다. 반공·친미·기복의 기독교를 비판하면 당장 친북·친공·불신의 기독교인으로 낙인찍힌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역할을 국가와 보험회사에 빼앗겨버렸다. 교인들 모두 부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눠주자는 메시지는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자는 메시지는 없다. 이처럼 샬롬 공동체의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 교회도 세상도 아닌 중간적 의미의 조직이 급증했다. 기독교 대학, 기독교 기업, 기독교 로펌, 기독교 정당, 기독교 시민단체 등 ‘기독교+거시기’를 만드는 것이 마치 기독교인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은이는 약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질문을 바꾸는 교회,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는 교회,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이충신 기자, 헌겨레, 2010-02-05 19:0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3104.html

 

김두식 (저자소개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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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7일 일요일

Tolstoï (Le Monde,04/02/2010)

Le romancier et dramaturge russe Léon Tolstoï en 1909.

1. Critique "Avec Tolstoï", de Dominique Fernandez : Tolstoï, le géant écartelé

LE MONDE DES LIVRES | 4 février 2010 | Robert Solé | 823 mots

L'écrivain restitue avec force les contradictions multiples et troublantes de l'auteur de "Guerre et Paix". Dostoïevski ou Tolstoï ? Pour Dominique Fernandez, qui a consacré plusieurs livres à leur patrie commune - dont le Dictionnaire amoureux de la Russie (Plon, 2004) et L'Ame russe (Philippe...

 

2. Critique "Anna Karénine, c'est moi", d'Elisabeth Jacquet : dans les pas d'Anna Karénine
LE MONDE DES LIVRES | 4 février 2010 | Jean Soublin | 489 mots

Voilà un texte primesautier, érudit et charmeur, et très littéraire : il devrait séduire - et instruire - bien des lecteurs. Alice est une femme sans mari, séduisante et délurée ; la quarantaine passée, elle travaille comme traiteur et satisfait ainsi l'un de ses penchants : la cuisine inventive et...

 

3. Critique "Tolstoï est mort", de Vladimir Pozner : récit d'une agonie mythique

LE MONDE DES LIVRES | 4 février 2010 | Danièle Sallenave | 655 mots

On sait où et comment Tolstoï est mort : en novembre 1910, dans la petite gare d'Astapovo où on conserve, et sans doute renouvelle régulièrement, l'empreinte de sa tête sur un oreiller. "Je désire être enterré sans la soi-disant cérémonie religieuse et qu'on mette mon corps en terre pour qu'il ne...

 

4. "Guerre et Paix" pour lecteurs pressés
LE MONDE DES LIVRES | 4 février 2010 | Alain Beuve-Méry | 485 mots

C'est une version raccourcie de l'oeuvre de Léon Tolstoï que Vladimir Fédorovski va exhumer le 1er avril aux Editions du Rocher, sous le titre "Guerre et Paix le feuilleton". Peut-on toucher au contenu d'une grande oeuvre littéraire ? Proposer par exemple une version raccourcie de Guerre et Paix,...

 

 

지난 목요일 르몽드에 톨스토이에 관한 위와같은 네 개의 짧은 기사가 실렸다. 올해가 톨스토이 사망 100주년 이라고(Léon Tolstoï, 1828-1910), 미리(11월 사망) 바람잡이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하나씩 읽어보고 정보적 가치가 있는 경우 옮겨다 둔다. 일단은 4번이 연대기를 포함한 이런저런 유용 정보를 담고있기에 펌.

 

4번 기사 전문 (<전쟁과 평화>의 빠른 독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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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audio]Tolstoï 13 étapes (cours de HG-1969,13x25mn) http://signesdulevain.textcube.com/79

2010년 2월 5일 금요일

"혁명의 연출":<공산당 선언>(1848)[르몽드-이번주의 책]

Couverture de l'ouvrage de Marx et Engels,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 (Le Livre de Poche).

 

무슨 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르몽드의 '이번주의 책' 코너에서는 맑스-엘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을 다루고 있다. 두 명의 전문가에게 이 책의 의미와 과제 등에 대하여 들어보는 인터뷰 기사와 간단한 '책소개 박스 기사'가 그것이다. 인터뷰기사에서 흥미로운 부분만 살펴본다 (내맘대로 대충번역) :

 

[둘째문단] 1844년에 헤스(Moses Hess)가 <공산주의 교리문답>을 발간했었는데, 1847년 11월에 엥겔스는 맑스에게 '교리문답'을 폐기하고 그것을 '공산주의 선언'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교리문답>이 비밀사회단체의 선전서클을 지향했다면, <선언>은 전 세계를 향한 공산주의의 정면 공포(선포)에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게해서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이 탄생하는데, <선언>의 초기 명칭은 <공산당 선언>이었으나 1872년 독일어판부터는 <공산주의 선언>이 됐다고 한다. 왜냐하면 1852년에 벌써 '공산주의자 연대 정당'의 해체를 제안한 맑스는 "현대사회의 곳곳에서 우발적으로 연속하여 탄생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자생적 조직화"에 기초하는 정당을 "하루살이 단명의 정당"과 엄격히 구별했기 때문이다. 즉 <공산주의 선언>은 기존의 도식적 틀로서의 정당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자생적-우발적-영속적 조직화를 목표로 했다는 말이겠다.

« Moses Hess, surnommé le "rabbin communiste", publie en 1844 un Catéchisme communiste par questions et réponses. [...] Engels suggéra à Marx dès novembre 1847 "de laisser tomber la forme catéchisme et d'appeler ça "Manifeste communiste"". A la différence du catéchisme, destiné à des cercles de propagande ou à des sociétés secrètes, le Manifeste se veut une proclamation "à la face du monde entier". Son titre initial,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 ne devient Manifeste communiste qu'à partir de l'édition allemande de 1872. Marx, qui proposa lui-même de dissoudre la Ligue des communistes en 1852, faisait très bien la différence entre "le parti compris dans le sens tout à fait éphémère" et le parti qui "naît partout spontanément du sol de la société moderne", c'est-à-dire de l'organisation spontanée du prolétariat en classe. »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디우와 지젝에 대한 비판 부분이다 :

 

[밑에서 둘째문단] 맑시즘의 가장 풍요로운 대목은, 그 이론이 의식이나 의지의 단순 표출행위에 머물지 않고 실천을 스스로의 논리로 무장한 '실천적 유물론' 이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은, 그 역사가 실재 역사의 우발성으로부터 무차별적인 영원한 이념이나 무규정적 가정으로나 가능한 그런 역사(공산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부여된) 주변역학(circonstances-정황) 속에서 구체적 역사를 산출해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전자의 공산주의(이념과 가정에 의한)를 방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바디우와 지젝이 그들이다. 그들의 그런(살찐-배부른) "구원적(祈願) 맑시즘"은 단순한 수사학적 경배(hommage)로 점철되고[한마디로 '말로만 하는 공산주의'라는 것], 결국은 강력한 종교적 범주 속의 이상주의(관념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 Le plus fécond chez Marx, c'est l'idée que, loin d'être la simple projection d'une conscience ou d'une volonté, les pratiques ont leur logique propre qui fait que leur résultat échappe souvent au contrôle des acteurs eux-mêmes : les hommes font leur propre histoire, mais ils la font dans des circonstances données. Si l'on reste fidèle à ce "matérialisme des pratiques", on ne peut que s'interdire de faire du communisme une hypothèse indéterminée ou une idée éternelle indifférente aux contingences de l'Histoire réelle. Cette conception, notamment défendue par Alain Badiou et Slavoj Zizek aujourd'hui, nourrit un "marxisme d'invocation" qui, sous couvert d'un hommage purement rhétorique, en revient à un idéalisme à forte dimension religieuse. »

 

 

[인터뷰] "Une mise en scène de la révolution"

LE MONDE DES LIVRES | 04.02.10 | 12h42
Les livres qui ont changé le monde (19/20) - "Manifeste du parti communiste", de Marx et Engels vu par Pierre Dardot, philosophe et Christian Laval, soci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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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it (<공산당선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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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bréviaire de toute l'Europe révolutionnaire
LE MONDE DES LIVRES | 04.02.10 | 12h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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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unisme, un spectre philosophique (外1)
LE MONDE DES LIVRES | 4 février 2010 | Jean Birnbaum | 1030 mots
Vingt ans après la chute du mur de Berlin, l'"idée" communiste est redevenue un étendard pour plusieurs intellectuels de renom. Philosophes ou sociologues, ils s'inspirent du récit marxiste pour essayer de tracer un nouvel horizon d'émanci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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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만 걸지 않고 기사를 퍼다두는 이유는 르몽드의 지난 기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유료로 변하기 때문이다.

Les différents types de voile musulman

La femme musulmane est censée se conformer à certains critères de pudeur, mais les parties du corps que cache le voile sont sujettes à interprétation.

프랑스에는 인구의 10%인 500만명이 이슬람 신도인데, 최근에 대두된 '국가정체성(identité nationale)' 논의와 겹치면서 공적 장소에서의 '뷔르까'(아래 사진 세번째)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고, 그런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이 국적취득을 거부당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공화국의 남녀평등사상에 입각하면 성 억압 도구로 보이는 이런 복장을 금지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적 개인들이 자유롭게 누릴 문화와 전통에 대한 국가기구의 지나친 간섭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의 법이 통과되기도 했지만 논란의 결말이 쉽게 내려질 것으로는 안보인다. 나도 아직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지 잘은 모르겠다 (물론 어중간한 중간 말고). 일단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voile(가면,복면,가리개 (적당한 우리말을 모르겠다))이 있다는 것만 상식삼아 알아두자 (아래 일부 가려진 네번째 사진은 Tchador로 이란여성들이 많이 착용한다고 설명).

Les différents types de voiles
[Infographie] Les différents types de voile musulman
LEMONDE.FR | 24.06.09 | 16h38  •  Mis à jour le 03.02.10 | 09h38
http://www.lemonde.fr/societe/infographie/2009/06/24/les-differents-types-de-voiles-musulmans_1210688_3224.html

"Une loi sur le voile intégral sera injuste et inapplicable"
LEMONDE.FR | 27.01.10 | 20h14  •  Mis à jour le 27.01.10 | 20h48
Dominique Rousseau, professeur de droit constitutionnel à l'université Montpellier-I
La mission parlementaire sur le port du voile intégral a préconisé, mardi 26 janvier, une loi l'interdisant dans un premier temps dans les services publics, transports compris. Pour Dominique Rousseau, professeur de droit constitutionnel à l'université Montpellier-I, "cette proposition n'est pas réaliste d'un point de vue pratique".
http://www.lemonde.fr/societe/article/2010/01/27/une-loi-sur-le-voile-integral-sera-injuste-et-inapplicable_1297290_3224.html#ens_id=1245449

2010년 2월 4일 목요일

무상급식에 대하여: 급식비의 무료보다 차등화가 낫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공약에서 촉발된 '전체 초등학생 무상급식'의 문제가 이번 6월 지방선거의 핵심이슈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섞인 전망이 있다. 하물며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인 한나라당의 원희룡까지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 대세를 바탕으로 야권에서 "'무상급식 연대'가 성사될 경우 이른바 '야권 연대'의 공동공약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아래의 기사는 말한다. 아래에서는 나의 좀 다른 생각을 정리해본다.

[윤태곤 기사] '무상급식', 지방선거 화약고 되나? 노회찬 "원희룡이 옳다. 오세훈은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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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공약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지난해의 '촛불정국'에서 숨은 위력을 보여줬던 '젊은 엄마'들에게는 더 그렇다. 그런데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은 돈이다. 전체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김문수 경기지사가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예산안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다른 정치적 의도도 있었겠지만 좋게만 봐준다면). 물론 일반시민들의 감성이나 헌법적 교육평등 개념을 적용하여 학교급식도 무상교육의 일환이라고 확대해석 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지방정치를 담당하는(재정을 배분하는) 실질적 책임자들에게는 아주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나라에서 아직도 점심을 굶는 초등생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지만, -잔인하게 말해서- 극소수의 그들을 위하여 전체 무상급식이라는 방법으로 재정을 할당할 만큼 우리는 아직 충분히 부자나라는 아닐지도 모른다. 당장의 절대적 무상급식보다는 서민일반이 안고있는 주거문제나 과다한 사교육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적시스템의 개발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 급식비(급식비의 차등화)보다는 절대적 공짜급식이 선거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류의 조선일보 주장이 어떤 면에서는 더 옳고 현실적이다. '무상급식' 이슈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어느정도는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알기에, 유아원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이 거의 없다시피한 프랑스에서도 절대적 무상급식을 하지는 않는다. -앞의 조선일보의 언급처럼-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학교 급식비는 다양하게 책정된다. 그것도 학생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게 시청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만 소득증명서의 확인을 통해 청구/지불된다. 물론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학교급식을 거부할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은 점심을 집에와서 먹고간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예컨데 특히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슬람 가정은 절대로 학교급식을 선택하지 않으며, 자녀의 건강상의 이유로 음식 선택을 까다롭게 해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 절대적 무상급식은 학교에서 점심을 안 먹는 경우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대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돈을 '무상교육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급식비'에서 충당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급식비의 차등화를 적용할 경우, 부자들은 급식비를 많이 내고 아이에게 싼 음식을 먹이느니 집에서 해결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학교급식의 혜택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부자도 아니면서 집에서 점심 식비를 지출해야 하는 가정에서의 불만 혹은 불평등 감정은 많이 줄어들고 시청의 재정은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무상급식은 학부모들의 편의성이나 공공교육의 평등이념에 더 합당한 정책이고 학생들의 평등교육에도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국민학교 시절에 부잣집 애들의 도시락 밥 위에 덮여있는 계란후라이가 그렇게도 부러웠던 때를 돌아본다면). 그러나 여기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단순히 돈이 많이 드니까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점심식사 시간에만 평등을 체험하고 그 외에는 만연한 불평등의 영역에 마냥 노출되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무상급식을 통한 평등의 실현은 좀 추상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공교육 영역에서 다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공적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예컨데, 사교육을 대체할 방과후 학교, 여름방학 (영어)캠프, 임대주택 정책, 극빈자 지원정책 등 평등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돈 쓸 곳은 무상급식 외에도 얼마든지 많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무상급식에 찬성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식적 차원에서 무상급식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고 찬성율이 높으니 단순히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몰아부칠 사안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이유가 있다면, 넉넉치 못한 지방정부와 교육청의 재정상태를 고려할때 무상급식으로 인해 다른 더 시급한 공교육정책에 상대적 부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때문일 것이다. '먹는거'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가 뭐가 있냐는 거친 항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오늘날 남한에서는 -물론 아직도 점심을 굶는 초등생이 있다는 사실은 유감스럽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의 경우 못먹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비만이 더 문제가 아닌가(우리의 장차 모델인 미국처럼).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굶는 초등생'에게 충분한 영양공급을 돕기 위하여, 공적시스템이 나서서 돕지 않아도 건강상에 별 문제가 없을 대부분의 초등생까지 포함한 일괄적 무료급식을 반드시 해야할 시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위에서도 밝혔듯이- 무상급식이 의무교육기관의 평등교육적 차원에서 좋은 정책임에는 분명하지만, 평등교육의 실천을 위해서 더 좋은 정책은 얼마든지 있고 결국 문제는 교육재정 배분의 우선순위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좋고 여론적 지지가 높더라도 올바른 공공정책의 실현 차원에서는 고려를 달리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일단은 지지가 많으니 실현 가능성이 높고,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실천을 하자는 취지라면(돈문제는 차치하고) 무상급식에 어느정도 공감을 할 수가 있지만, 원칙적 의미에서는 무조건 찬성에 회의를 품어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보면(*), 현행 급식 시스템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급식비 지원이 학생과 선생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 신학기가 되면 그 학생들의 비굴한 '선생 대면'이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성적도 모자라 밥값으로 줄을" 세우는 반-교육적 행태가 벌어지는 듯하다. 이건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위의 프랑스 사례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급식비 지원신청서를 학생에게 받을 것이 아니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급식비의 청구/지불은 담당기관(프랑스의 경우 시청)에서 학부모와 담당자 간에 이뤄지고, 그 금액의 구체적 내용은 부모가 자녀에게 알리지 않는 한 비밀이 돼야 할 것이다. 손쉬운(교육재정과 배분정책을 고려않은) 일괄적·절대적 무상급식을 주장하기 이전에 이런 사소해 보이는 행정적·절차적 조치의 보완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이런 사소한(그러나 중요한) 절차적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마당에, 무슨 절대적 무상급식을 통해 평등교육을 한방에 실현하려고 꿈꾼다는 말인가. 오히려 상대적 무상급식을 하면서 차등화된 급식비의 내용을 학생이 모르게(혹은 차등화가 더 민주적임을 알게) 하는 평등교육이 더 현실적이고 더 실천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라는 제도 속에서도 학생들이 눈칫밥이 아니라 즐거운 식사시간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체험케 하는 '교육으로서의 무상급식'이 돼야지, 돈/건강/편의 등이 무상급식의 잣대가 돼서는 안된다.

 

(*) 성적도 모자라 밥값으로 줄 세울텐가 / 배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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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문제2] 불구들의 불구경 (외고와 진보진영)

'외고구하기'에 올인한 <조선일보>, 야당과 진보는 어디에…
백병규의 세상읽기, 2009/10/23 (http://blog.ohmynews.com/walker/253514)

 

[...]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외고 등 특목고의 부작용과 폐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야당이나 진보언론, 그리고 교육 시민단체들이 반응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 고교별 수능성적 공개에 대해서는 학교 서열화를 조장해 학교교육 전체를 망가트리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외고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는 데 대해서 기민한 대응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외고논의’는 진보진영의 손을 떠나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중동 세 신문이 외고 문제 등에 대해 서로 온도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외고만 없앤다고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학교의 다양화와 수월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야당이나 교육∙시민단체, 진보언론의 대응은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사실 그런 점이 없지 않다. 외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특성화고교로 전환한다고 해서 사교육 문제가, 그리고 학교교육의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두언의원 등 외고 폐지론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장벽이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 외고폐지론 정도를 들고 나온 것은 보수진영과 여권 내 사정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최선’이다. 그런데도 외고를 전환시킨다면 ‘일반고’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일반론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야당이나 진보단체들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다. 여권 내에서 추진한다고 하니, 보수 진영 내에서 서로 치고 받고 있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민주당은 특히 전적으로 정두언 의원의 개정안을 밀어주는 것이 상도의상으로도 맞는 일이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도 못했던 일을 정두언 의원이 그나마 어렵사리 하려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집권 세력이 그것을 추진하려 하자 이제 와 한 술 더 떠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공자말씀만 되뇌고 있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그것으로만 사교육을 잡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은 야권과 진보진영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과 진보진영, 진보 언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백병규)

 

 

(*독자주) 보수꼴통인사들의 자식보다는 진보개혁 쪽에 어떻게든 한다리 걸치고 있는 자들의 자식이 아무래도 공부는 더 잘 할테니(이유는 각자 상상..), 어떻게 보면 지금의 야당과 진보진영의 관계자들이 외고-특목고에 더 깊은 이해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아마도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지금처럼 침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아니길 바라지만 혹시나 싶은 괘씸한 생각이 갑자기 든다. [위의 펌글은 긴 앞부분을 잘라냈고, 아래는 앞 뒤로 모두]

 


cf.) 사교육 관계자들의 '취중토크'...

"외고는 있는 자들만의 리그" (오마이-박상규)


[...]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좀 말리고 싶은 학부모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유는 이런 것이다. 과거에는 반에서 1~2등 정도 하는 초등학생들이 외고를 준비했다. 그때는 당연히 경쟁도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특목고를 늘린다고 하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반에서 15등 정도 하는 친구들도 외고 등 특목고 준비에 뛰어 든 것이다. 한 마디로 '특목고 열풍'이 분 것이다. 김 원장은 "외고가 폐지되면 이 경쟁은 한 풀 꺾일 것이고, 괜한 경쟁에 뛰어들어 고생하는 아이들도 줄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고를 보라, 과학고 열풍이 분 적이 있나"라며 "과학고는 그 수가 굉장히 적기 때문에 정말 똑똑하고 천재성이 있는 아이들만 준비한다"는 근거를 댔다.

서울에는 외고가 모두 6개, 과학고는 3개교가 있다. 올해 선발 예정 인원을 보면 대원외고 420명, 대일외고 420명, 명덕외고 420명, 서울외고 350, 이화외고, 210명, 한영외고 360명 총 2170명이다. 그리고 과학고는 한성과학고 140명, 세종 160명, 서울과학영재학교 121명(이미 선발 완료) 총 421명 선발할 예정이다. 물론 외고 과학고 모두 정원 외 모집은 빠진 수치다. 서울에서만 외고생들이 5배가 많다. [...] 


출처) "글로벌 인재? 외고 아닌 사교육이 키웠지!  재력 안되는 부모들 외고 준비 안타깝다"
오마이뉴스 09.10.23 13:55 ㅣ최종 업데이트 09.10.23 14:20  박상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3669&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