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뻔뻔유전자-뻔뻔심리 (김경애 글에서..)

신문은 맨날 보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던, 처음 만나는 김경애 기자라는 사람의 글인데(아래 펌), 아주 좋다. '루저 대란'의 파장에 휘둘리면서 또 다른 한 명의 여성으로서 누구나 하는 그런 지겨운 변호과 질책의 변을 되풀이하는 그런 글이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쉽게 찾아지는 '당당함'의 이면에 숨어있는 함정에 대한 '부드러운 고발'이다. 신세대적 당당함이 '루저 대란'을 낳았다면, 잠시 그 '당당함'을 조금만 해부해보자는 것이다.

당당함과 용기를 특권으로 누려야 할 청춘들에게, 험한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어른들이 물려준 삶의 교훈이라는 것이 소위 '성공제일주의' 였는데, 결국은 그것이 "뻔뻔한 유전자"로 돌연변이 돼어 나타나고 말았다는 진단이다. 그런데 돌연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대학교수고 간에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놈들이 웬만한 범법과 부정 정도는 당연시하며 뻔뻔함을 모범으로 보이니, 문제는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것은 바로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뻔뻔한 유전자를 물려주지만, 그 유전자를 건강하게 조작하고 개조할 책무는 너희에게 있다'는 요청은 젊은이들에게 너무 지나친 것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이제는 젊은이들이 그 뻔뻔함으로 '어른들'을 부정하고 그들의 '인생철학'에 반역하고, 세상의 좀 다른 진리에 용감히 맞서 스스로 찾아가야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맘대로 다시 풀어본 거친 정리보다는 아래에 옮기는 여성 기자의 말씀과 문장이 훨씬 아름답다. 참조: [사내 칼럼] 한겨레 프리즘: http://www.hani.co.kr/arti/SERIES/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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