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시베리아로 (학술)여행을 떠나기 전의 글(지난주)과 다녀온 후의 글(오늘자)을 일부만 발췌해 온다. 앞의 것은 '향수'에 대한 글이고, 뒤의 글은 '반성'에 대한 것 : 스탈린 시대의 사악성과 실패가 아무리 거의 공인된 상태라 할지라도,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는 웬만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교육,의료,주거 등)이 보장되는,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방향과는 체제의 철학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였다는 점에 대한 향수 (1) ; 그러나,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당연히 자기화 했어야 할 '민주주의 자체'(인민의 주체성 존중 등)의 정신을 너무 소홀히 했고, 더불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요소들'(인민의 단순 욕망들에 대한 고려 등)에 대한 일상적(기본적) 요청들에 너무 무심했다는 것이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2). 흔히 자본주의적 질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2번에 방점을 찍겠고, 자본주의의 근원적 사악성을 치료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사회주의의 기본 가치에 주목하는 나같은 자들은 당연히 1번을 더 중요시 할 것이다. 박노자는 둘의 실천가능한 결합의 유일한 모범으로 차베스 사례를 들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더 많은 좌향좌가 필요하다'며 글을 맺는다. 근데 그 게 어디 꼭 유럽 뿐이겠는가... [Cleptocracy-도둑놈들의 정치 (klepto-kleptein) 라는 표현은 새롭기도 하거니와 적용할 데도 많을 듯한 것이, 잘 기억해 뒀다가 언제 활용해 봐야겠다.]
박노자, 시베리아에서, 향수와 희망, 레디앙, 2009/11/16(월) 08:14
(...) [구 소련의] 혁명적 인텔리겐차의 그 유명한 '무푼주의'(besserebrennichestvo - 돈에 대한 무관심)가 그래도 간직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엇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관료주의적 중앙집중적 경제운영 체계 ('한 공장과 같은 한 나라')에서는 물론 부분적으로는 시장의 요소도 존재했지만 (국가는 고용자들이 만들어낸 잉여를 수취하여 재생산에 투입시키는 등 국가적 자본의 확대재생산은 경제운영의 원칙이었습니다) 수많은 부분들이 비시장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학 입학시의 까다로운 입시, 의료서비스의 낮은 질, 연금의 박함, 주거 환경의 열악성과 새로운 주택을 배급 받기 전에 서야 하는 몇 년간의 긴 줄 등은 불만일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교육, 의료, 노후, 주거 등은 사회가 비시장적으로 책임지는 까닭에 개인으로서 두려울 것은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리 마음 먹어도 직장을 잃어 장기 실업자 될 수도 없었고 (직장 알선은 국가 책임이었습니다) 굶어죽을 수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아파서 죽을 수도 없는 세상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 마음의 여유의 표현은 바로 각종 벽(癖)들이었습니다. 미하일 박 선생님의 한문 원전 번역벽 같은. 좀 희귀한 일에 미치면서 서로 별로 다르지 않은 나날들을 그래도 재미있게 보내는 것은 소련 시민들의 낙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정치적인 권위주의로부터의 자유는 없었지만, 경제적 억압으로부터의 상당한 자유는 주어져 있었습니다. 지금 러시아 같으면 물론 이것도 저것도 다 없다고 봐야겠지요?
스탈린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도 아니고 그 어떤 이상 사회도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일체 부문 (주거부터 의료, 교육까지)을 비시장화시킨 후기 스탈린주의 특징 등을, 사회주의자로서는 당연히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로운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는 '겁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한해서는 구 동구권 사회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주기는 합니다. 과거이면서도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이기도 합니다.
출처: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6202
박노자, 내일을 위한 사회주의 : '황금의 중도' 차베스 노선 성공과 유럽의 좌향좌, 2009/11/23
(...) 지금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cleptocracy (도둑들의 정치)... 스위스제 몇 천만원 짜리 이상의 시계를 차지 않으면, 그리고 겨울에 프랑스의 쿠르세벨에 가서 초호화 휴가를 즐기지 않으면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오늘날의 러시아 '대도형 지배자'들... 제가 말씀 나눌 수 있는 저쪽 동료 분들은 구 소련 시절의 '가장 기억하기 아픈 문제'로 두 가지 이야기합니다:
1. 정치적인 '공공영역'의 부족 / 사석에서야 못할 이야기는 사실 없었지만 공석에서 기탄없는 합리적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습니다. 신문에서는 검열이 태심하고, 집회 자유나 결사 자유는 이름뿐이고, 합리적 토론을 전개하기 위한 외국 서적도 마음대로 다 주문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던 '공공영역'이 사실상 동료끼리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정치 험담 ("저 간부놈들이 이제 또 뭔 짓을...") 수준으로 좁혀지니 내면의 자유는 있어도 그 자유의 사회화는 불가능했대요. 그러면 인문학은 정치화된 '어용학문'과 정치를 아에 배제하고 '순수학술'만 따르는 인문주의적 아카데미즘으로 양분되고 점차 힘을 잃어간답니다.
2. 민간소비 부문의 위축 / 일부는 정치적 성격이었지만 (해외 여행과 해외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매우 엄격한 제한 등)민간소비 부문의 위축은 대체로는 군수복합체에 투자하느라 정신없는 국가는 단순히 경공업 등에 투자를 너무나 덜한 것이었습니다. 시장이 아닌, 국가의 행정적 결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제다보니 국가로서는 우주공학 등에 투자를 더 하고, 화장실 휴지 생산에 투자를 거의 안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우주에 비행할 일은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휴지 하나 구입할 수 없는 '인민의 낙원'은 좀 지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어요.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윗세대는 '무기'의 중요성을 잘 인지했기 때문에 그냥 참을 수도 있었지만, 신세대로서는 욕구불만 해소의 길은 없었습니다. 그 불만을 말로 표현하는 것까지 불허되니 쌓이고 쌓인 체제에 대한 혐오는 결국 한꺼번에 나중에 터지고 말았습니다. (...)
출처: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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