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민주연합논쟁 6 : 진보와 개혁의 정치경제학 (김기원 편)

김기원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속이 다 후련한 그의 글이 반갑다. 최장집의 고상한 민주주의론도 손호철 류의 궁색한 신자유주의 반대론도 이 위기적 상황에서는 다 꺼지라며 내까리는 일갈에 자신감이 엿보인다. 여기저기 눈치보며 대충 욕 안 얻어먹을 만큼만 적당히 비판하며 균형잡힌 학자연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솔직하게 다 까놓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용기에서는 민중에 대한 어떤 간절한 애정도 읽힌다. 난무하는 어줍잖은 비판과 변명들을 바야흐로 모두 평정할 시의적절한 논평이 아닐까 싶다. 전문을 문단에 손 하나 안 대고 그대로 옮긴다 (약간의 밑줄은 치고 국민참여당 창당대회 모습의 사진은 삭제, 시국에 덜 직접적인 부분은 더보기로 처리함) [더보기에서 '반신자쥬주의' 비판 부분(손호철 겨냥)에서는 논변이 약간 부족하여 찜찜한 구석도 있지만 통과].

 

 

진보와 개혁의 정치경제학

[창비주간논평] '그놈이 그놈'을 떨치려면…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1-20 오후 3:02:36

 

요즘 야권과 시민사회의 화두는 '연대'다. 4분 5열되어 있는 진보개혁진영에서 연대의 분위기가 이처럼 고조된 적은 별로 없었다.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정권의 폭주를 막아보려는 노력의 표현인 셈이다.

김대중-노무현정권이나 이명박정권이나 "그놈이 그놈"이라 하던 일부 진보진영도 지난 2년간 뜨거운 맛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용산참사, 4대강 강행, 미네르바 구속, 부자 감세, 노조 및 시민단체 탄압, 방송 장악, 재벌개혁 후퇴, 남북관계 경색 등 사회 각 분야의 '후진화'가 너무나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 사이의 연대는 단순한 선거공학적 의미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보와 개혁의 필요성과도 연관된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안일한 판단 떨쳐야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 말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샛강이고,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차이는 한강이라 치더라도 그 샛강만큼의 차이도 민중의 삶에는 중요하다. 이를 무시하는 건 세속을 초탈한 도인의 자세거나 마천루 빌딩 위에서 시내 교통정리를 하려는 행태다.

물론 아직도 최장집 교수처럼 이명박정권이 보수지만 민주주의라는 납득하기 힘든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정권을 비판할 언론의 자유마저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데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최교수가 노무현정권을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던 걸 생각해보면 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도대체 일관성도 없다. 지금이 군사독재 상태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독재로 향하려는 그 '방향성'을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야권과 시민사회 연대 본격화… 민주당의 역할은?

이런 어둠의 세상에 한줄기 서광은 진보개혁세력의 연대에서 비쳐왔다. 작년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울산북구 선거에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뭉침으로써 (친)한나라당 세력을 물리쳤던 사례가 그것이다.

그래서 야 5당과 4개 시민단체의 '5+4회의'를 비롯한 연대의 움직임들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세력인 민주당은 연대를 위해 의미있는 양보를 할 생각이 있는 것 같지 않고, 진보신당은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회의 자리에 앉기는 했으나 판을 깰 명분만 찾으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민주당이 호남에 안주하지 않고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려면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중에게 호소력있는 지도부와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예전에 재야를 대거 수혈했듯이 내부구성을 환골탈태시키든가 이번에 연대를 위해 통 큰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호남지역의 단체장이나 의원들 중엔 지역주의에 안주한 낡은 인물들이 적지 않다. 시국선언 교사를 중징계한 호남 교육감들을 보라. 6월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런 종류의 인물들을 갈아치우고 단체장이나 지자체의원 후보의 예컨대 절반쯤을 다른 야당과 시민단체에 양보하면 어떤가.

 

진보세력, 차이 강조보다 연대에 적극 나서라

진보세력은 랄프 네이더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그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며 선거를 끌고 나가 부시의 당선에 한몫했다. 그 결과 자신의 지지층도 위축돼 2000년엔 300만 표 가량 얻었으나 그후엔 100만 표에도 미치지 못했다.

진보세력은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한통속으로 몰아붙이면 자기 지지기반이 확대되는 걸로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많은 국민들 보기엔 민주당이나 진보파나 모두 한나라당 반대쪽에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 진보파에 대한 지지는 동행한다.

진보파가 성장하려면 민주당을 욕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처럼 민주당 의원보다 진정성과 실력이 앞서고 대중과 더 열심히 호흡하는 게 정답이다. 또 노무현이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주도해 지지를 얻었듯이 진보파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연대에 나섬으로써 자기 세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양보로 민심 얻는 솔로몬 재판의 교훈

죽으면 살리라. 지난 대선 때 문국현이 단일화에 응했으면 민주당 당권을 잡았을지 모른다. 그러지 않은 문국현은 결국 망가지고 말았다. 당파의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때 오히려 비약한다.

두 아낙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툰 쏠로몬의 재판에서 칼로 아이를 잘라서 반씩 가지라는 판결에 진짜 엄마가 양보했다. 그러나 그 양보로 결국 아이를 되찾았다. 큰 세력인 민주당은 크기 때문에 양보해야 하고, 진보파는 더 진보적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한다. 이럴 때 감동을 산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탐욕'을 조종한다. 반한나라당은 국민의 '감동'을 사야 한다. 야권들의 감동경쟁을 보고 싶다. 뻔히 당선 불가능한 선거에서 막판 단일화까지 거부해서 누구 좋은 일 시키자는 걸까.

지명도 제고나 정책 홍보라는 선거공간의 의미도 요즘엔 희미해졌다. 자신의 존재확인을 위해 민중 운운하면서 결국 반민중적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선거용 연대만이 아닌 사회적 과제의 해법 찾기를

지금 진보개혁세력의 연대가 '묻지 마 연대'라는 지적도 있다. 당치 않다. 이명박정권의 폭주에 반대한다는 걸 알고 연대하는 것이며, 서로의 차이를 알고도 연대하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적 합의를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하지만 랄프 네이더가 존 케리에게 했듯이 상대편이 받기 힘든 요구를 연대의 전제로 삼는 건 '판 깨기의 알리바이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는 단지 이번 선거공간에서만 요구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과제의 해법이 거기에 달려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흔히들 개념 정의 없이 사용하는 진보와 개혁의 내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보/개혁의 정의를 통해서 본 연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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