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여론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Habermas)

2008년 말에 있었던 몇몇 흥미로운 여론조사의 결과를 통하여 하버마스의 여론론을 공부해본다('2008년'에서 보듯이, 지난 글을 옮겨옴). 지난 여론조사는 병역의무 대체복무제에 관한 좀 파장이 큰 이슈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10만원권 지폐 발행에 관한 것이다. 구체적 내용을 따지고 평가하기 전에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대립되는 찬반 의견의 주축에 세대별로는 30대가 좀 다른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위 '여론 주도층'과 국민 일반이 대하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의견이 극도로(!) 상반된 상태라는 것이다(물론 여론조사 자체에 꼼수가 끼어들지 않고 정정당당했다는 전제 하에). 둘 다가 바야흐로 21세기적 인터넷 문명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이것에 대한 구체적 논거를 찾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기에 길게 늘일 생각은 없다. 단지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마도 30대와 그나마 어떻게든 좀 자유롭고 용감하게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먹물층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라는 것을 운영하지만 그럴 시간도 여건도 용기도 못 갖춘 사람들이 아마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닐까 짐작되기 때문이다.

 

 

일단 기사를 보면, 10만원권 발행에 대하여

"30대(39.2%<49.5%)만 예정대로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앞섰다. 그 외 연령층은 발행 유보 의견이 우세해, 40대(53.6%>41.1%)를 비롯해 50대이상(52.5%>32.1%), 20대(49.4%>42.6%) 순으로 정부 방침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정당별로는 민주노동당 지지층(64.9%>26.9%)이 발행 유보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유선진당(41.1%<46.6%) 지지층은 발행 의견이, 한나라당(44.9%<45.3%)과 민주당(49.7%>47.0%) 지지층은 의견차가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경향신문 12월 24일자).

 

여기서 어느 쪽 의견이 정당하냐에 대한 의견은 유보키로 하고, 30대와 민주노동당 지지층의 의견 대립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30대는 민노당 지지층과는 좀 다른 사회-경제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그래서 둘 사이에는 뭔가 모를 생각의 상이점이 있다는 말이겠다. 어떻게 보면 단지 10만원권 지폐 발행이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안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10만원권이 주는 심리적 크기가 그 둘 사이에는 다르다는 말이고, 이 다름은 결국 30대가 민노당 지지층이 될 가능성의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아마 그래서 최근에는 진보신당에 젊은 피의 수혈이 많이 이뤄졌고, 그래서 진보신당이 정체성의 혼돈 과정에 있는걸지도!).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민감한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문제로 넘어간다.

 

 

군 대체복무제에 대해 여론 주도층의 80% 이상이 동의를 하는 반면 국민 일반의 68%가 반대를 한다는데, 이건 너무 심각한 대결구도가 아닌가. 심각한 만큼 뭔가 두 그룹을 나누고 있는 엄청난 골-간극이 있다는 얘기인데,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공론장의 구조변동> 이라고 국역된 하버마스의 최초의 주저(교수자격논문집,1962-초판,1990-증보판)를 다시 펼쳐 봤다. 여론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맹점은 무엇인지, 그것이 갖는 정치·사회적 파장은 얼마며 그 과정에서 엘리트·부르조아들이 갖는 역할과 폐해는 얼마나 적극적인지, 등등이 궁금하다. 이런 이론적 얘기에 대한 고민은, 밑에 부록삼아 달아두는 펌 서평 한 편으로 대신하고, 각자가 계속 하기로 하고, 일단은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본다.

지지난 달에 있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용역에서는 " 여론주도층의 80% 이상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안에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국회의원(51명), 변호사(30명), 교수(99명), 기자(109명), 종교인(263명) 등 554명을 대상으로 ‘대체복무제에 대한 전문가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 응답자의 85.5%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현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 이에 견줘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항목에는 19.8%만 동의했다." (한겨레 10월 28일자)

 

반면,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허용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무청은 24일 대전대학교의 '진석용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종교적 사유 등으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대체복무 허용 여부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8.1%(1천365명)가 허용에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연령별로는 60대(87.8%)에서 반대가 가장 많았고 30대(57%)에서 가장 낮았으며 학력은 고졸 이하(75.2%)가 많이 반대했다. (...) 전체 응답자 중 대체복무 찬성 허용은 28.9%(580명)에 불과했다." (한겨레(연합뉴스) 12월 24일자)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의견에서 국방부는 훌륭하게도(!) 국민일반의 의견을 존중하여 대체복무제 도입을 보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한겨레 신문은 이렇게 나무란다 :

"국방부가 정책변경 근거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든 것도 편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국방부가 지난 10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에 맡겨 (...) 벌인 전문가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5%가 대체복무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소수자 인권문제의 특성상 전문가 견해가 중시돼야 하는데도, 사안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부족한 일반인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쟁 없는 세상 등 35개 인권·평화 운동단체가 함께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이날 성명을 내어, “국방부는 여론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0년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된 뒤로도 3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전과자가 되어야 했다”며 “보편성의 잣대로 소수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다양성 침해이자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12월 24일자)

 

감옥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는다거나,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대체복무가 가진자들의 병력기피용으로 전용되어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예상되는 악습의 대안은 무엇인지, 등의 제도적·기술적 문제는 차치하고,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몹시도 혼란스럽다. 먹물 낀 내 처지에 어울리게, "소수자 인권", "평화", "양심", "자유" 등의 파수꾼으로 나선 전문가들의 편에 서야할지, "사안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부족한 일반인"의 감성적 판단을 존중해야할지, 좀 난감하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국민의 68%, 더구나 고졸 이하 학력자의 75% 라는 숫자는 그 어떤 훌륭한 이론과 주장도 압도하는 너무 큰 숫자가 아닐까? 특히 75%를 보인 고졸 이하 학력자들이 이제는 충분히 '소수자'로 대우(취급이 맞겠지!) 될 시점이 멀지도 않은 듯하고, 이 75% 라는 숫자 속에 숨어있을 (그들이 오랫동안 속으로만 삼켰을) 사회적 배신감과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울분의 '감정'은 과연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아닐 듯하다. 아닐 것이다.

 

여기서 소위 '진보'가 좀 애매해진다. 앞에 열거된 '전문가적 가치'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가라는 명찰만 달았지 실상은 엘리트·지배계층으로서 힘없는 '일반인'의 희생으로 스스로의 위치만 다지는데 익숙한 그들을 편들 수도 없지 않은가? 가까운 주위만 둘러봐도 위의 여론조사 대상이 된 높으신 분들 중에서 자식을 군에 보내는 경우는 촌스런 도덕성이나 맹목의 국가관이 투철한 몇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진보가 존중해야할 '전문가적 가치'라니...  결국은 '우리나라만의 특수성' 쪽에서 다시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나? 잘 모르겠다. [생각의 탈출구가 없으니 일단 책 속으로나 숨자.]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Jürgen Habermas, 1962, 1990 (17ed).

 

펼쳐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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