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1일 목요일

[무상급식4]여론, 감성, 도덕 & 선거전략 (조기숙 편)

무상급식이라는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안건은 누구나가 도덕적으로 공감하는 '합의쟁점'일 뿐이고 투표의 향방을 결정짓는 '균열쟁점'이 아니므로, 야당이 여기에만 목숨을 걸어서는 낭패를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아래 조기숙(전 청와대 홍보수석) 글의 핵심이다. 누구도 이런 합의쟁점에 반기를 들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당장에 4대강에 투입할 돈도 부족한 처지의 여당이 전면무상급식을 선뜻 받아안을 수는 없으니 그들은 일단 반대를 하고 대부분의 진보세력은 찬성을 한다. 그래서 홍준표의 물타기작전이 시작되는 듯한데, 그는 '대학등록금을 차등화 하자'고 하면서 급식비의 차등화(혹은 선별적 무상급식)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전면무상급식의 약점을 공격하려는 듯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아래 조기숙의 글은 야권의 선거전략에 상당히 유익한 준거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지나는 길에 나의 지난 관련 글(무상급식 반대론 1,2)에 보태어 두 가지만 다시 언급한다.

1) 많은 무상급식 찬성론자들은 '아이들의 눈칫밥 해소'를 주요한 찬성의 이유로 삼는 듯한데, -내가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문제는 중요한 지점이지만 간단히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다. 왜 급식 담당 책임자(시청이든 학교든)와 학부모가 직접 접촉을 하여 급식비 결제를 하지 않고, 선생이 어린 학생들에게 '급식비 못 낼 사람 손들어'라고 하는 저급한 행태를 취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누가 무상급식 대상자이고 누가 얼마의 급식비를 내는지는 선생도 학생도 배식자도 알 필요가 없고(알아서는 안되고), 급식비 결제는 단지 학부모와 담당자 사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프랑스는 그렇다).

2) 흔히 대부분의 선진국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예로 드는 나라는 영국-미국-일본과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이다. 자원과 돈은 많고 인구는 적은 북유럽은 우리가 삼을 기준이 못되겠고, 그 외에는 대체로 영-미-일이 제한적인 무상급식을 하고 다른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차등급식(불-12등급(*))을 하는 듯하다. 복지선진국과는 거리가 멀고 '돈이 없으면 아파도 병원엘 못가는 나라', '세계에서 대학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의 표상인 영국과 미국이 상당한 정도의 무상급식을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보편적 복지의 요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입막음의 수단으로 기댄 일종의 포퓰리즘적 정책의 결과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즉, 우리에게는 무상급식이 보편복지를 위한 첫걸음이 될지 종착역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식비를 내되 그 가정의 소득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전년도 수입을 기준으로 총 12등급으로 나누어 한끼 식비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해 수입이 777유로 미만인 경우에는 한끼 식사가 1.06유로(약 1500원)입니다. 그러나 소득이 7183유로 이상인 경우에는 한 끼당 6.54유로를 내야하죠."([무상급식1] 댓글 참조)

 

 

 

무상급식 쟁점화? 야당에겐 남 좋은 일 하는 꼴
[주장] 지방선거 승리 위해 21세기 진보 연대 필요

오마이뉴스 10.03.10 19:35 ㅣ최종 업데이트 10.03.10 19:40  조기숙 (choks00)  
 

요즘 민주당 후보자를 만나보면 하나 같이 명함에 '무상급식'을 새기고 다닙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쟁점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진보신당 예비후보는 "이번 지방선거가 무상급식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광맥을 발견한 것처럼 무상급식에 매달리는 진보진영 후보를 보며 꾸역꾸역 불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무상급식이 쟁점화되면 어느 쪽에 유리할까요? 한 마디로 여야가 비기는 싸움이라고 봅니다. 즉, 역대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늘 승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야당에게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하는 쟁점을 야당이 선점하는데 야당에게 불리하다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무상급식 쟁점은 도덕적 쟁점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론의 지지가 높습니다. "어떻게 초등학생을 굶길 수가 있지?"하면서 마치 무상급식을 하지 않으면 다수의 학생이 굶게 되는 것처럼 정서적인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경기도 의회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처럼 감성적인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감성적인 쟁점은 초기에는 폭발력을 갖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권자는 차분하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왜 이 쟁점에 직접 뛰어들었을까요?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어차피 찬성파와 반대파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양분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층은 이 쟁점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한나라당이 조중동과 방송을 동원해서 무상급식은 교육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된다며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함으로써 더 나은 공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선전하기 시작하면 여론은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쟁점은 여론조사를 통해 어떤 입장이 유리할지 판가름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신이 확고한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여론조사에서는 무상급식에 찬성한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쟁점이 유권자에게 도덕적인 쟁점으로 받아들여지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쟁점에 대한 태도가 표로 연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권자는 여론조사에서는 무상급식을 찬성한다고 답변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쟁점을 보고 투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쟁점은 전국민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합의쟁점'입니다. 선거에서 쟁점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은 균열쟁점이지 합의쟁점이 아닙니다. '균열쟁점'이라 함은 양진영이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중요하면서도 국민들 사이에 지지가 양분되는 쟁점을 의미합니다. 유권자는 균열쟁점에 따라 투표하지 합의쟁점을 보고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균열쟁점은 유권자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누가 쟁점을 어떻게 제시하고 설득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진보진영이 무상급식을 주요 선거쟁점으로 의제화했을 때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진보진영이 무상급식에 올인하는 동안 한나라당은 그 예산을 사용해서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설득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무상급식 쟁점이 여론조사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표에서는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진보진영은 무상급식 쟁점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쟁점을 포기하는 순간, 핵심 지지층이 진보진영에 투표할 의욕도, 선거운동을 할 의욕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이 쟁점에 관한 한 절대 흔들리지 말고 무상급식 입장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쟁점에만 묻혀서 승부를 보려고 덤빈다면 낭패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선거 후에 여론조사에서는 우리가 이겼는데 왜 선거에서는 패배했을까 하며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어서(선거전략에 대하여)

펼쳐두기..


 

 

댓글 2개:

  1. 다음의 두 발언 중에서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안타깝게도 이번만은 정부 관계자의 말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아무리 좋은 동기와 의지도 거짓에 근거하여 추진 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1.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방송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의무교육인 경우 무상급식을 동반하고 있으며 이는 보편적 복지"라며...

    2. 안병만 장관도 3일 당정회의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어느 선진국도 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도 재정형편상 어렵다"고 말했다.



    출처1,2: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new_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b%ac%b4%ec%83%81%ea%b8%89%ec%8b%9d&contents_id=AKR20100311152300001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new_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b%ac%b4%ec%83%81%ea%b8%89%ec%8b%9d&contents_id=AKR201003111557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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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아르디티는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증상’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증상’이란 개념은 프로이트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자아의 형성을 위한 본능의 억압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대리표상’이자 ‘내부의 주변부’ 같은 것이다. 요컨대 포퓰리즘이란 민주주의에 이질적인 어떤 것이나 적대적 타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속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불안과 소요를 일으키는 ‘민주주의의 내적 주변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아르디티의 판단 근거는 민주주의에 내장된 이중성이다.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는 정치인·관료 등 전문가 집단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지만 동시에 선거라는 대중의 직접 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과 작동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치의 영역 안으로 주기적으로 대중의 개입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존재론적 뿌리가 된다는 게 아르디티의 견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이 두 측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인민 의지의 직접적 표현에 대한 열망’으로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아르디티는 단언한다. [...] (포퓰리즘 민주주의 ‘병리현상’ 아닌 ‘필수요소’한겨레ㅣ'학술'ㅣ2010.03.17 20:08:54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10695.html)



    cf.) Benjamin Arditti, “Populism as an Internal Periphery of Democracy,” in Panizza, ed.,. Populism and the Mirror of Democracy, 7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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