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무상급식에 대하여: 급식비의 무료보다 차등화가 낫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공약에서 촉발된 '전체 초등학생 무상급식'의 문제가 이번 6월 지방선거의 핵심이슈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섞인 전망이 있다. 하물며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인 한나라당의 원희룡까지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 대세를 바탕으로 야권에서 "'무상급식 연대'가 성사될 경우 이른바 '야권 연대'의 공동공약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아래의 기사는 말한다. 아래에서는 나의 좀 다른 생각을 정리해본다.

[윤태곤 기사] '무상급식', 지방선거 화약고 되나? 노회찬 "원희룡이 옳다. 오세훈은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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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공약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지난해의 '촛불정국'에서 숨은 위력을 보여줬던 '젊은 엄마'들에게는 더 그렇다. 그런데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은 돈이다. 전체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김문수 경기지사가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예산안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다른 정치적 의도도 있었겠지만 좋게만 봐준다면). 물론 일반시민들의 감성이나 헌법적 교육평등 개념을 적용하여 학교급식도 무상교육의 일환이라고 확대해석 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지방정치를 담당하는(재정을 배분하는) 실질적 책임자들에게는 아주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나라에서 아직도 점심을 굶는 초등생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지만, -잔인하게 말해서- 극소수의 그들을 위하여 전체 무상급식이라는 방법으로 재정을 할당할 만큼 우리는 아직 충분히 부자나라는 아닐지도 모른다. 당장의 절대적 무상급식보다는 서민일반이 안고있는 주거문제나 과다한 사교육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적시스템의 개발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 급식비(급식비의 차등화)보다는 절대적 공짜급식이 선거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류의 조선일보 주장이 어떤 면에서는 더 옳고 현실적이다. '무상급식' 이슈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어느정도는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알기에, 유아원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이 거의 없다시피한 프랑스에서도 절대적 무상급식을 하지는 않는다. -앞의 조선일보의 언급처럼-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학교 급식비는 다양하게 책정된다. 그것도 학생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게 시청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만 소득증명서의 확인을 통해 청구/지불된다. 물론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학교급식을 거부할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은 점심을 집에와서 먹고간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예컨데 특히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슬람 가정은 절대로 학교급식을 선택하지 않으며, 자녀의 건강상의 이유로 음식 선택을 까다롭게 해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 절대적 무상급식은 학교에서 점심을 안 먹는 경우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상대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돈을 '무상교육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급식비'에서 충당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급식비의 차등화를 적용할 경우, 부자들은 급식비를 많이 내고 아이에게 싼 음식을 먹이느니 집에서 해결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학교급식의 혜택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부자도 아니면서 집에서 점심 식비를 지출해야 하는 가정에서의 불만 혹은 불평등 감정은 많이 줄어들고 시청의 재정은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무상급식은 학부모들의 편의성이나 공공교육의 평등이념에 더 합당한 정책이고 학생들의 평등교육에도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국민학교 시절에 부잣집 애들의 도시락 밥 위에 덮여있는 계란후라이가 그렇게도 부러웠던 때를 돌아본다면). 그러나 여기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단순히 돈이 많이 드니까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점심식사 시간에만 평등을 체험하고 그 외에는 만연한 불평등의 영역에 마냥 노출되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무상급식을 통한 평등의 실현은 좀 추상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공교육 영역에서 다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공적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예컨데, 사교육을 대체할 방과후 학교, 여름방학 (영어)캠프, 임대주택 정책, 극빈자 지원정책 등 평등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돈 쓸 곳은 무상급식 외에도 얼마든지 많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무상급식에 찬성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식적 차원에서 무상급식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고 찬성율이 높으니 단순히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몰아부칠 사안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이유가 있다면, 넉넉치 못한 지방정부와 교육청의 재정상태를 고려할때 무상급식으로 인해 다른 더 시급한 공교육정책에 상대적 부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때문일 것이다. '먹는거'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가 뭐가 있냐는 거친 항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오늘날 남한에서는 -물론 아직도 점심을 굶는 초등생이 있다는 사실은 유감스럽지만-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의 경우 못먹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비만이 더 문제가 아닌가(우리의 장차 모델인 미국처럼).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굶는 초등생'에게 충분한 영양공급을 돕기 위하여, 공적시스템이 나서서 돕지 않아도 건강상에 별 문제가 없을 대부분의 초등생까지 포함한 일괄적 무료급식을 반드시 해야할 시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위에서도 밝혔듯이- 무상급식이 의무교육기관의 평등교육적 차원에서 좋은 정책임에는 분명하지만, 평등교육의 실천을 위해서 더 좋은 정책은 얼마든지 있고 결국 문제는 교육재정 배분의 우선순위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좋고 여론적 지지가 높더라도 올바른 공공정책의 실현 차원에서는 고려를 달리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일단은 지지가 많으니 실현 가능성이 높고,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실천을 하자는 취지라면(돈문제는 차치하고) 무상급식에 어느정도 공감을 할 수가 있지만, 원칙적 의미에서는 무조건 찬성에 회의를 품어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보면(*), 현행 급식 시스템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급식비 지원이 학생과 선생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 신학기가 되면 그 학생들의 비굴한 '선생 대면'이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성적도 모자라 밥값으로 줄을" 세우는 반-교육적 행태가 벌어지는 듯하다. 이건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위의 프랑스 사례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급식비 지원신청서를 학생에게 받을 것이 아니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급식비의 청구/지불은 담당기관(프랑스의 경우 시청)에서 학부모와 담당자 간에 이뤄지고, 그 금액의 구체적 내용은 부모가 자녀에게 알리지 않는 한 비밀이 돼야 할 것이다. 손쉬운(교육재정과 배분정책을 고려않은) 일괄적·절대적 무상급식을 주장하기 이전에 이런 사소해 보이는 행정적·절차적 조치의 보완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이런 사소한(그러나 중요한) 절차적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마당에, 무슨 절대적 무상급식을 통해 평등교육을 한방에 실현하려고 꿈꾼다는 말인가. 오히려 상대적 무상급식을 하면서 차등화된 급식비의 내용을 학생이 모르게(혹은 차등화가 더 민주적임을 알게) 하는 평등교육이 더 현실적이고 더 실천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라는 제도 속에서도 학생들이 눈칫밥이 아니라 즐거운 식사시간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체험케 하는 '교육으로서의 무상급식'이 돼야지, 돈/건강/편의 등이 무상급식의 잣대가 돼서는 안된다.

 

(*) 성적도 모자라 밥값으로 줄 세울텐가 / 배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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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무상급식 주제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비용의 차등화가 때로는 더 공정한 경우도 있다는 취지에서, 아래의 기사를 통해서도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의 일종인지 평등을 위해 정말 시급한 정책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자꾸 내 보조가 조선일보에 맞춰지고 야권의 지방선거전략에 덜 유익할 듯해서 좀 불편하지만 '진실을 찾는 여정'에서는 어쩔 수 없다).



    “부유층엔 제값, 저소득층엔 무료진료” / 김지환 기자

    [...]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이웃린치과는 ‘무상 의료’의 실험장이다. 은평·서대문·마포구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수억여원의 치과전용 단층촬영(CT)기를 갖춘 치과병원이 저소득층 치료에 눈을 돌린 것은 홍수연 원장(43·사진)의 남다른 철학 때문이다. 그는 “교육·의료·주거여건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홍 원장은 “삼성 이건희 전 회장과 이랜드 파업노동자가 같은 질의 치료를 받으면서 같은 비용을 내는 게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 아니냐”고 물었다. [...] 무상 진료가 봉사가 아니라 제도로 정착되길 바라는 홍 원장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건강을 결정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보건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한다면 당연히 마주칠 수밖에 없는 화두가 ‘건강 형평성’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상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은데 개별적으로 하는 게 아쉽다”며 “무상 진료도 조직적으로 해 현재의 상업적인 의료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향 입력 : 2010-02-06 01:48:10ㅣ수정 : 2010-02-06 01:48: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060148105&code=9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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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이곳에서 공립 유치원 원비는 전혀 없습니다. 교재구입같은 항목도 없어요. 대신 매월 식비만 제출하면 되죠."



    그러니까 교육비는 무료, 점심 식비만 내면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식비는 과연 얼마나 들까. 부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식비를 내되 그 가정의 소득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전년도 수입을 기준으로 총 12등급으로 나누어 한끼 식비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해 수입이 777유로 미만인 경우에는 한끼 식사가 1.06유로(약 1500원)입니다. 그러나 소득이 7183유로 이상인 경우에는 한 끼당 6.54유로를 내야하죠. 식사의 질과 메뉴는 동등합니다. 다만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야하는 거죠."



    맛있게 식사를 하던 우리는 입이 벌어졌다. 소득에 따라 식비를 다르게 낸다? 생경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규칙은 식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치원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된다. 유치원이 쉬는 수요일, 아이를 맡길 경우에 따로 돈을 지불해야 하거나 방학 때 유치원을 아이를 맡길 경우 또는 방과 후 종일반에 맡겨야 하는 등…. 따로 돈을 지불하는 모든 경우, 등급에 의해 철저히 적용된다.(물론 항목별로 금액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기본 비율은 비슷하게 적용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소득이 높다하더라도 자녀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담해야 하는 식비가 줄어든다는 것. 예를 들어 월 7183유로 이상을 버는 부부가 있다 치자. 이들 부부가 아이가 하나인 경우 부담하는 한 끼 식비는 6.54유로. 그러나 아이가 다섯이면 3.92유로다. 물론 이 법칙은 모든 등급에서도 동일한 비율로 적용된다. 그야말로 소득이 적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많다 할지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결론이다. [...]



    출처 : "우아한 파리생활 물 건너 갔지만...

    공짜유치원에 점심값도 소득별로"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5170&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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