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밥상혁명>(강양구·강이현 著)[조효제 評]

"살고 싶다면, 당신의 밥상을 엎어라!" / 조효제
[화제의 책] 강양구·강이현의 <밥상혁명>, 살림터 펴냄

 

요즘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치고 학교 급식에 관심 없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학교 무상 급식을 둘러 싼 대립으로부터 급식의 안전성과 품질 문제 등등. 그런데 이 문제를 하나의 교육 정책 항목으로 다루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교 급식이라는 화두를 통해 인간관과 세계관을 조망하는 경지에까지 이를 수는 없을까? 이런 점에서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음미할 만한 사례가 된다. 이른바 '먹을거리 교육'이 그것이다. 교육 이론가들의 아이디어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공식 정책이다. 2005년에 먹을거리 기본법까지 제정되었다. 이 법은 그 전문에서 "아이들이 풍부한 인간성을 키우고 살아가는 힘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먹을거리'가 중요하다. (…) 그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기본이다"라고 선언한 후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국민의 식생활에서 영양 불균형, 불규칙한 식사, 비만과 같은 생활 습관병 증가, 과도한 다이어트, 먹을거리의 안전 문제, 외국 의존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 한 문장 속에 인간의 삶과 건강, 근대성의 한계, 지구화의 폐단이 강력하게 암시되어 있다. 총리가 의장을 맡는 추진위원회가 생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이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국회에 매년 이행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생산자와 영양사가 상의해서 급식의 내용과 질을 결정한다. 한 마디로 말해 건강한 먹을거리 문화의 정착을 위해 전 사회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얌전한 모범생 같아 보이는 정책이지만 그것의 실천적 함의를 살펴보면 식품의 상업화, 다국적 기업, 정치지리학 등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이 엿보인다. 이 정도면 일본 생활정치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나라를 한번 돌아보자. 학교 급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시민운동 쪽에서 식생활교육기본법을 제정하자는 요구를 계속 해왔다. (실제로 최근 일본을 따라했지만 그 내용에서는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의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정·발효되었다.) 그러나 2006년에 발생했던 기업 제공 식자재 식중독 사건 이후 학교 급식을 2010년까지 직영 급식으로 전환하도록 개정된 학교급식법을 다시 무효로 하려는 개정안을 일부 국회의원들이 제출해 놓은 상태다. 사회적 퇴행의 징표다. 우리 식중독 사건을 전해들은 일본의 한 영양사가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학교급식을 정말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나요? 어떻게 그 중요한 교육을 대기업에 맡길 수가 있죠?" 아이들의 밥그릇에까지 장사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천박상과 물신성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밥상혁명>(강양구·강이현 지음, 살림터 펴냄)에 소개된 수많은 사례들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생생한 사례들을 훑어가다 보면 어느새 이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움과 분노와 희망이 한꺼번에 축약되어 있는 책, 그것이 이 책을 덮으면서 든 느낌이다.

 

<밥상혁명>이 묻는다…"무엇을 먹을 것인가?"
최근 몇 년 사이 먹을거리에 대한 책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밥상혁명>은 몇 가지 확실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책은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현직 언론인들이 철저한 현장 조사를 거쳐 완성해 낸 의지와 발품의 산물이다.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 현장을 찾아 국내를 샅샅이 훑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으로도 눈을 돌려 미국, 영국, 인도,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의 먹을거리 운동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이 정도로 넓은 폭과 현장성이라면 국제 저널리즘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높은 차원의 시도라 할 만하다. 미국 같았으면 당장 퓰리처상 탐사 보도 분야의 후보 목록에 올랐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 이 책은 곳곳에서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운 현실 감각으로 원론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수작이다. 그 결과, 스스로 꽤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독자라도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좀 더 깊이 생각해볼 고민거리를 선사 받는다.

 

예를 들어 보자. 건강과 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기 농업 먹을거리와 친환경 식품이 좋다는 데 찬성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농약 친 농산물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농산물만 찾아 먹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 책의 '농약에 의존하는 농민, 밉지만…'이라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다음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①먼 나라에서 생산된 유기 농산물.

②제3세계 농민들이 생산한 공정무역 먹을거리.

③관행 농업(통상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지역 먹을거리.

정답은? 세 번째다. 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일찍이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덮어놓고 자꾸 차원을 높이는 것은 안 됩니다. (…) 유기 농업을 하는 농민뿐만 아니라 농약을 쓰고 화학 비료를 쓰고 그러는 농민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질 낮은 유정란을 생산하는 생산자를 내치는 게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코 이 땅의 농민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행 농업으로 생산하는 농민들을 끊임없이 설득해 내야 한다. 그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길이라고 한다. 학교, 직장, 식당에서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구매하면서, 동시에 소비자가 유기농 먹을거리를 원한다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격려, 인센티브, 꾸준하고 지속적인 진보의 방향 제시, 대중과 함께 하는 운동 등이 이 교훈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이것을 연대와 상생의 환경-생명운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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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12-25 오전 9:28:53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22152125&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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