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8일 화요일

UFO의 함정, 소망적 사고, 악마의 변호사...

[아침햇발] 함정에 빠진 MB / 정남기
 
인간의 이중성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 가운데 ‘소망적 사고’라는 것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는 태도다. 선거를 앞두고 어느 당이 승리할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좋아하는 정당을 꼽는다. 쉽게 말해서 예측과 희망을 구분하지 못한다. 비슷한 것으로 ‘유에프오(UFO)의 함정’이 있다. 자기 생각과 비슷한 사실만 보게 하고 반대 사례는 무의식중에 무시하거나 멀리하는 태도다. 이런 식으로 자료를 모으다 보면 유에프오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탈리아의 인지심리학자 마테오 모테를리니가 <마인드트랩>에서 지적한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들이다.

 

이쯤 되면 인간이 과연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그럼에도 자기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이를 막는 유일한 장치는 대화와 소통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직관만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권력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구보다 자기 판단이 정확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다. 민주주의가 결과보다 절차를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비판과 견제가 없다면 권력자의 잘못된 판단과 의지가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이 그렇다. 세종시와는 또 다르다.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자기확신에 의해 추진되는 국책사업이다. 대통령의 의지 하나로 예비타당성조사가 생략되고 예산안도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자기확신의 근거로 제시한 사례가 경부고속도로다. 건설 당시엔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자기확신을 강화시켜주는 사례다. 하지만 그는 실패 사례가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사례만 기억하는 ‘유에프오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부고속철도다. 고속철도가 철도교통의 혁신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철저하게 실패한 사업이다. 이용객은 예상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건설비와 이자, 매년 쌓이는 적자로 철도공사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4일 호남고속철도 기공식을 했다. 미래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론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다. 11조원의 건설비와 개통 이후 적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지방공항은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다. 이 대통령은 또 4대강의 수질 악화 우려에 대해 “앞으로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론과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소통 없는 자기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만과 독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심지어 종교에서도 이를 경계하고 있다. 중세의 전통이 살아있던 16세기에 가톨릭 교단은 ‘악마의 변호사’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시성식에서 성인으로 추대될 사람을 의도적으로 비판하는 일을 맡기기 위해서다. 끊임없는 비판과 부정을 통해서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국책사업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7일부터 시작된 4대강 사업 예산심의에서 여야 격돌이 예상된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대립과 갈등 또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테니까.

 

정남기 논설위원, 기사등록 : 2009-12-07 오후 09:33, ⓒ 한겨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