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학업성취도, 경제력과 유전자 사이에서...

12월 9일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이라는 곳에서 지난 5년 간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결과를 분석하여 발표했다. 수능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분석인데, 분석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대별된다 : 지역효과(강남), 환경효과(경제력), 학교유형효과(특목고). 여기서 학교격차보다는 지역격차가 더 크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고, 특목고 출신이 일반고 상위권 학생들에 비해 많이 더 나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는 사실(선발 효과일 뿐 교육 효과는 아니라는 분석)도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부모의 경제력보다는 학력수준이 자식의 점수에 더 결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진보적(?) 논쟁이 필요한 지점이겠다. 경제결정론 보다도 유전자결정론이 우선한다는 분석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흔히 속된 말로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공부도 부잣집 자식이 잘한다'는 경제결정론적 사회비판이 진보적 시각에서 누차 제기됐던 게 사실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감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는 그 반대의 결과를 알려준다 : '부잣집 자식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학벌유전적 효과가 자식의 성공에 더 지배적이다' 라고. 물론 학벌 높은 부잣집이나 학벌 낮은 가난한 집의 경우는 논의의 대상도 안되겠지만, 문제는 '학벌 낮은 부자'와 '학벌 높은 안-부자'의 두 경우 중에서 자식의 성공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부모의 학력이라는 점이다 (아래 기사에서는 '부모'가 아니라 '아버지의 학력 수준'이 자식의 성적에 비례한다고 구체화하고 있으나, 우리적 기준에서 아버지보다 학력이 높은 어머니는 많지 않을테니 기사의 '아버지' 자리에 '부모'를 대체시켜도 무방히리라 여겨짐). 

 

이런 연구 결과는, 돈은 있으나 못 배운 한 때문에 자식에게 물량공세적 과외라도 시켜 좋은 대학 보내려는 부모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테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까. '경제적 계급'이든 '지적 계급'이든 둘 다 -일찍이 부르디외(P.Bourdieu, 1930~2002) 학단에서 조사한 바와 같이- 자식의 장차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본(capital)인 것이 사실이다 (아래 그림 참조). 그러나 경제자본(capital economique)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자본(capital culturel) 종속적인 사회구조도 어떻게든 정당하지 못하다면, 경제결정론이나 유전자결정론이나 둘 다 사회적 악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어느 것이 더 우선적 지위를 갖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든 미래세대의 현재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다.

 

이러한 인식적 공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전적 문화자본이 불평등하게 유증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평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정치적 능력(perfection politique)을 무력화시키는 패배적 발상이 된다. 문화자본의 작은(?) 차이가 각자에게 각기 다른 종류의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종사하는 직무의 다름이 공평한 시민적·인간적 가치의 차이로까지 이어지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인든- 틀을 무화시키는 작용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정치가 아닐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라는 말이겠다.

 

참조: 한겨레 기사

펼쳐두기..

 

Espace_social_de_Bourdieu.svg(Fichier SVG, résolution de 800 × 800 pixels, taille : 37 Kio)

 

댓글 1개:

  1. 부르디외 항목의 한글판 위키(영어-일어판도)에는 위의 도표도 없고 내용도 아주 빈약하다.

    불어판 링크 : http://fr.wikipedia.org/wiki/Pierre_Bourdieu



    참고로 짧은 한글판 전체를 옮기면(누가 빨리 좀 보충을 해야할 듯!) 이렇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년 ~ 2002년 1월 23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다. 알제리 사회학, 재생산, 구별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텔레비전에 대하여, 경제학의 구조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가 제창한 아비튀스의 개념은 유명하다.

    참고문헌 [편집]

    중앙일보 고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07%20%20&Total_ID=1098164

    한겨레 지식인이여, 누구 편에 설 것인가: http://www.hani.co.kr/section-021014000/2002/01/021014000200201300395055.html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