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세계국가 vs 국민·민족국가 (김수행 칼럼에서)

민족국가를 넘어 '전세계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평화의) 세계국가를 만들려는 꿈은, 국경도 민족도 상관없이 돈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거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바야흐로 (전쟁같은) 자본의 세계화로 변질됐다. 이러한 질풍의, 질곡의 세계화를 위하여 민족국가가 갖는 본연의 배타적 사악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배척돼온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물론 민족국가라는 기준이 점차 희석돼가는 세계사적 추세를 고려한다면, 그 자리에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올려놔도 별로 상황은 달라질 것이 없다.

 

이제 세계국가는 인류적 희망과 지구적 평화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갖는 한계와 변질 가능성이 더 크게 부각된다. '어떤 세계국가인가'를 묻고 있기에는 지구가 너무 크고, 인류라는 추상 단위로 포섭되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다양성이 결코 작지 않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세계국가의 꿈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때로는 민족국가보다도 더 사악한 모습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라면, 차라리 (민족)국민국가의 배타성을 다시 긍정할 시점에 우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민족주의를 반대만 하면 무조건 진보가 된다고 생각하는 뭇 진보주의자들의 반성이 요청되는 지점. 더불어 민족을 꼭 피의 순수성으로만 한정하고 국경·언어·국민 등으로 확장하여 해석하길 거부함으로써 민족주의 비판의 잣대를 자기화·협소화 하는 경직된 행위들도 경계.]

 

아마도 그래서 "국민적 자급자족인가, 세계정부인가"라고 김수행 교수는 물으며 확답을 주저하는지도... 이하 그의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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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 박노자, 노동자는 왜 이 체제를 받아들일까?, 레디앙 2009/12/24 08:04,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6664



    모든 사회주의자들에게 그렇듯이 그에게는 "노동자들이 이 체제를 왜 받아들이는가?"라는 화두는 인생의 제일 화두이었는데, 위에서 말한 에세이(조지 오웰, 제2차대전 초반에 쓴 <The Lion and the Unicorn>)는 그 답변의 시도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웰이 노동자에게 혁명/계급을 '민족'이 대체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노동대중들의 민족/애국주의는 꼭 '위에서 주입된 이데올리기'라기보다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거의 자연발생적이다 싶은 일종의 '자애자중의 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그가 본 노동자들의 '영국 민족'은 학술적으로 정의되는 '공동 언어, 문화, 시장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연대'라기보다는 일종의 '속살, 관습, 아비투스'입니다. 태어난 지방의 사투리를 쓰고 매일 저녁에 같은 주막에서 맥주를 마시고, 축구를 자존심으로 삼고, 그리고 모든 외국 것들을 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습성부터, 영국의 선거제나 사법부를 "문제는 있어도 일단 기본적으로 부패하지 않고 민의를 대변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 부분까지, 이 모든 것들은 다 노동자 대부분의 '영국성' (Britishness)이었는데, '국제연대'를 외치는 극소수 지식인들의 그 어떤 노력도 이 유서 깊은 '습성의 영역'을 바꿀 수 없다고 그가 단언했습니다.



    [...] 자본은 지구화돼가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대개 '국지적' 인간들입니다. 자본가들이야 영어 실력이나 국제여행 연혁부터 화려하지만 노동자의 '국제경험'이란 잘해봐야 일본에서의 불법 체류 및 노동과 값싼 4박짜리 중국 내지 월남 여행 정도입니다. 자본가는 유럽이나 일본 요리를 즐기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삼겹살과 소주로 울고 웃고 삽니다. 강남족의 자녀들은 이미 중, 고등학교 때부터 세계 고전 공부를 잘하여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관람하면서 즐길 줄 알지만, 노동자의 '문화'란 장동건과 김태희, 그리고 잘돼야 도올의 텔레비전 논어 강의 정도일 것입니다.



    [...] 자본가에게 다층적, 다각적 '세계'가 열려 있지만,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한국어와 한국 텔레비전, 한국식 대중요리와 오락,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평생의 (감옥과도 같을 수도 있는) '국내살이'입니다. 그러기에 노동자는 꼭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서 하루 종일 한 번 앉지 못해 일하느라 다리와 허리가 아파 죽겠는데, 뭔 '민족주의'가 필요하나요? 그 따위는 여유있는 인간들의 관심거리죠), 대개는 '한국적'이지 않을 수 없죠. [...] '동시다발적 세계 혁명'이란 어디까지나 '여유 있는 이들'을 위한 고심거리일 것입니다. [...] 말이야 쉽지, 국내식으로만 살게끔 구조적 조건이 다 맞추어져 있는, 국내라는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다 싶이 하는 분들에게 '국제 연대'란 결코 쉬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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